美 반도체 제재에…Arm 기반 설계서 탈피

▲RISC-V는 Arm에 대항하는 오픈소스 기반 CPU IP다./사진=지멘스
▲RISC-V는 Arm에 대항하는 오픈소스 기반 CPU IP다./사진=지멘스

반도체 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국의 강력한 견제로 궁지에 몰린 중국이 자국내 빅테크인 알리바바와 텐센트까지 규합해 반도체 설계 기술 독립에 나섰다. 영국의 팹리스 Arm에 대한 설계자산(IP) 분야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독자 구성한 오픈소스형 설계 구조 ‘리스크파이브(RISC-V)’ 중심의 자국내 컨소시엄을 지원해달라고 두 기업에 요청한 것이다. 반도체 설계 기술 자립을 위해 사실상 정부가 나서 민관을 아우르는 대응 체제를 갖추려는 것이다.

지난 29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최근 알리바바와 텐센트에 ‘베이징오픈소스칩연구소’에 대한 지원을 요구했다. 이 연구소는 중국 정부 주도로 중국과학원 등 국가 연구기관과 민간 기업들이 참여해 지난해 12월 출범했다. Arm의 IP를 대체하겠다는 목표 아래 리스크파이브 기반의 고성능 컴퓨터용 프로세싱 칩 ‘샹산’을 개발하는 등 중국 반도체 자립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Arm에 대한 의존도 낮추기에 급급해진 배경은 미국의 강력한 대중 제재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7일 첨단 반도체와 슈퍼컴퓨터용 반도체, 특정 반도체 장비 등 중국에 대한 수출 통제 방침을 발표했다. 미국의 압박이 강해질수록 일본 소프트뱅크가 모회사이고 영국에 본사를 둔 Arm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중국으로서는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실제 일본은 미국과 동맹 관계를 계속 강조해왔고, 영국에서도 최근 정계를 중심으로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동맹체계를 공고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과의 갈등 여파로 중국이 Arm 아키텍처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Arm의 반도체 설계 기술은 저전력이 필요한 스마트폰의 90% 이상, 태블릿 PC의 85% 이상에서 사용되고 있고, 클라우드 서버, 인공지능(AI) 프로세서 등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반도체 IP 시장에서 Arm의 점유율은 40%가 넘고, 특히 중국 기업이 생산하는 반도체 칩의 90% 이상은 Arm 설계를 기반으로 한다. 알리바바, 바이두, 텐센트 등 중국 빅테크 기업 대부분은 Arm 아키텍처로 서버용을 비롯한 칩을 설계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FT는 “미국의 제재가 강화되고 있는 만큼 중국 정부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이 Arm의 대항마로 지목한 리스크파이브는 오픈소스 칩 설계 아키텍처다. 지난 2010년부터 미국 UC버클리 연구진이 개발해 2014년 세계 최대 반도체 컨퍼런스인 ‘핫 칩스’에서 처음 공개됐다. 누구나 이에 기반한 반도체 칩과 SW, IP를 설계·제조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컨설팅 업체 딜로이트에 따르면 리스크파이브 관련 시장 규모는 지난해 4억달러에서 오는 2024년에는 10억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중국의 한 정부 관계자는 FT에 “리스크파이브 기반 칩 설계에 대한 지원에 나서면서 중국의 반도체 설계 기술이 궤도에 오를 수 있다”면서 “미국의 반도체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최악의 상황에 대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앞서 알리바바 경우 중국 정부 추진에 앞서 바이트댄스와 손잡고 리스크파이브 기반 고성능 칩을 개발하는 팀을 구성해 연구에 주력해왔다. 또 알리바바 클라우드의 반도체 자회사 핑터우거(T-Head)는 2019년 7월 처음 리스크파이브 기반 코어 프로세서 ‘쉬안톄(玄鐵) 910’을 출시했고, 작년 5월 두 번째 리스크파이브 기반 프로세서 ‘쉬안톄 907’도 발표했다.

다만 현재로선 리스크파이브 시장이 걸음마 단계라는 점에서 중국이 이른 시일내 Arm의 대안으로 삼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리스크파이브의 경우 단지 아키텍처만 제공하기 때문에, 이에 적용되는 소프트웨어 스택 기술은 자체 개발해야 한다. 즉 훨씬 많은 소프트웨어 사슬을 확보하고 있어야 응용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현재 리스크파이브 아키텍처가 비교적 설계하기 쉬운 IoT용 칩 코어 설계에만 사용되고, 스마트폰‧PC 등에 활용용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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