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이 각각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 가운데 무려 10%를 글로벌 3대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인 칼라일그룹에 전격 매각했다. 칼라일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뜻밖의 파트너로 부상함과 동시에 향후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경영 가속화 행보에도 조력자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다. 

지난 5일 정규장 마감 후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을 통해 정 회장과 정 명예회장은 현대글로비스 지분 각각 3.3%, 6.7% 등 총 10%를 칼라일 특수목적법인(SPC) ‘프로젝트 가디언 홀딩 리미티드’에 매각했다고 공시를 통해 밝혔다.

이에 따라 최대주주인 정 회장의 지분은 기존 23.29%에서 20%로 줄었고, 정 명예회장은 지분을 전량 처분하고 주주 명단에서 빠졌다. 칼라일은 현대글로비스 지분의 10%를 확보, 정 회장과 덴 노르스케 아메리카린제 에이에스(11%)에 이어 현대글로비스의 3대 주주로 올라섰다. 뒤를 이어 현대차(4.88%), 현대차정몽구재단(4.46%)이 각각 4, 5대 주주다.

이번 지분 매각은 당장 지난달 30일부터 발효된 개정 공정거래법에 따라 총수 일가 지분율을 20% 이하로 낮추기 위한 조치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대기업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인 상장사(비상장 20%)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던 기존 규제를 상장사 20%로 강화했다. 개정안에 따라 정 회장과 정 명예회장이 지분 29.99%를 보유한 현대글로비스가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오너 일가 지분 10%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마침 칼라일그룹이 우군으로 나선 셈이다.

정 명예회장과 정 회장은 지난 2015년에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맞춰 대규모 지분을 매각한 바 있다. 지난 2014년말 기준 정 명예회장과 정 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율은 43.4%였는데, 이듬해 블록세일을 통해 1조1576억원어치 지분을 매각해 보유 지분율을 30%로 낮췄다.

현대글로비스는 완성차의 해상 운송과 자동차 부품 수출 등을 주력사업으로 한다. 크게 종합물류업과 유통판매업, 해운업 등 세 가지다. 세 부문이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각각 32.70%, 52.80%, 14.49%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현대글로비스의 총 매출액은 15조 9358억원, 영업이익은 8011억원이었다. 상장사인 현대글로비스의 5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6조 4875억원이다.

이번 글로비스 주당 매각가는 16만3000원으로 정 명예회장은 4103억원, 정의선 회장은 2009억원의 자금을 각각 확보하게 됐다. 이들 부자는 6000억원이 넘는 현금을 손에 쥐게 됐으며, 상장을 추진중인 현대엔지니어링을 통해서도 최대 5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돼 1조원이 넘는 자금이 생기게 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통해 정 회장이 정 명예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 7.2%를 승계받기 위한 세금으로 사용하거나 직접 모비스 지분을 살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정 회장은 지난 2018년 현대차의 최대주주(21.43%)인 현대모비스를 분리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식의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했지만 행동주의펀드 앨리엇 파트너스의 공격을 받아 이를 포기한 바 있다.

이번 딜을 놓고 금융투자(IB) 업계와 산업계는 단번에 지분율을 낮추면서도 주가 하락을 방어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칼라일을 주요 주주로 맞이하면서 향후 글로비스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기대감도 높이기 위한 카드였다고 본다.

칼라일은 이번 딜로 이사회 자리 1개를 확보하게 된 것은 물론 정 회장이 지분을 매각할 때 함께 지분 매각에 나설 수 있는 태그얼롱(동반 매도) 권리를 부여받았다. 시장에서는 이같은 조건이 정 회장과 이규성 칼라일 최고경영자(CEO) 간의 신뢰 없이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 CEO는 운용자산 규모가 300조원에 달하는 칼라일의 한국계 CEO다. 그가 2020년 단독 CEO로 임명된 이후 지난해 칼라일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단순 지분 인수를 넘어 향후 칼라일이 전 세계에 보유한 투자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현대글로비스와 전략적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국내외 우량 기업 인수·합병(M&A)과 제휴 활동도 적극 지원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또한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변화와 경영권 승계 과정에 필요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확실한 도우미 혹은 파트너로 떠오를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에 따라 정 회장의 이번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을 계기로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21.4%)→현대차(33.9%)→기아(17.3%)→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 구조다. 현대모비스가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 핵심 3사의 지분율(현대차 2.62%, 기아 1.74%, 현대모비스 0.32%)이 낮은 정 회장이 상장사 중에서 유일하게 최대주주(20%)인 회사다. 그동안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의 열쇠를 쥐는 것으로 꼽혔던 이유다.

 

저작권자 © 파이브에코(FIVE ECO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