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네덜란드 ASML, 미국 온투이노베이션⋅KLA 등의 교육센터가 클러스터에 입주해 있습니다. 내년 연말쯤 대형 장비업체 10개를 유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김정웅 서플러스글로벌 대표는 6일 경기도 용인 본사에서 열린 ‘반도체 장비 클러스터’ 준공식에서 이 같이 밝혔다. 클러스터는 반도체 중고장비 공급사 서플러스글로벌 본사면서, 해외 반도체 장비 업체들의 교육센터가 입주한 공용 시설이다. ASML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장비 회사들이 교육시설과 데모센터 등을 갖추기 위해 클러스터에 입주했다. 해외 기업이 국내에 관련 시설을
반도체 중고장비 플랫폼 회사 서플러스글로벌은 경기도 용인 본사 'R&D 파운드리' 클린룸에서 300㎜ 테스트 웨이퍼를 첫 출하했다고 20일 밝혔다.R&D 파운드리는 반도체 소재·부품 업체들이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자사 샘플이 실제 양산 라인에 잘 적용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시설이다. 그동안 중소·중견 규모 소재·부품 업체들은 샘플 테스트 설비를 갖추기 위해 대규모 설비를 투자해야만 했다. R&D 파운드리를 활용하면 직접 장비를 구매하지 않고 빌려 쓸 수 있어 경제적이다.최준영 서플러스글로벌 R&D 파운드리 담당 상무는 “지난
사회적 책임(CSR)이 기업의 필수 덕목으로 꼽힌 지도 20여년이 지났다.지난 2000년 국제기구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가 지속가능보고서 발행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10년 뒤 국제표준화기구(ISO)가 CSR에 대한 국제 기준 ‘ISO26000’을 제정했다.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최근에는 기업의 사회적 활동을 가치로 환산, 실질적으로 사회에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대한 지표를 개발하는 일이 한창이다.반도체 업계도 CSR이라면 빠질 수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들은 매년 지속가능
반도체 중고장비 세계 1위 서플러스글로벌이 경기도 용인 ‘반도체 장비 클러스터’ 착공에 들어갔다. 지난 2011년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와 관련 양해각서(MOU)를 교환한 지 9년 만이다. 클러스터가 완공되면 글로벌 장비 업체들과 30여개 재정비(리퍼비시) 업체들을 입주시켜 중고 장비⋅서비스⋅부품 허브로 발전시킬 계획이다.외부 업체 유치 통한 원스톱 서비스 그동안 서플러스글로벌의 전시장은 경기도 평택 및 용인 4개 사업장으로 흩어져 있었다. 4개 전시장 총면적은 9000평 정도다. 지난 4일 착공한 클러스터 완공(내년 6월
라임글로브(대표 최혁준)와 서플러스글로벌(대표 김정웅)은 다음달 15일 반도체 장비 교육센터 '세미콘글로브'를 개소한다고 22일 밝혔다.라임글로브는 지난 2004년 설립돼 인재육성 분야에서 활약해온 기업으로, 그간의 노하우와 사업수행 경험을 세미콘글로브 운영에 반영할 예정이다. 서플러스글로벌은 교육에 필요한 공간과 1000여대의 다양한 반도체 장비를 제공, 양질의 교육 커리큘럼을 수립하는 데 기여한다.한국은 반도체 강국이지만 교육 인프라는 열악하다. 교육 기관들이 고가인 반도체 장비를 활용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인치가 아닌 법치를 바랐던 칭기즈칸은 대 쟈사크 (대칙령)을 통해 시스템을 구축해 나갔다. 대칙령의 조항 하나하나를 보면 그가 얼마나 뛰어난 리더였고 그가 어떤 세상을 꿈꾸었는지 볼 수 있다. 천하에 무서울 것 없는 칭기즈칸도 이 대칙령을 어기지 않고 철저히 지켰으며, 대칙령은 몽골제국의 통치를 탄탄하게 하고 칸의 권력을 강화해준 초석이 되었다. [1]그는 어떤 농업정주문명의 법을 따라하지 않았고 수백 년 동안 유지되어온 유목민 부족들의 관습과 전통을 강화했다. 동시에 자신의 새로운 사회에 방해가 되는 낡은 관행들은 없애 버렸다.
유목제국의 확장과 몰락초원이나 사막지대 유목민들의 단합과 분열은 주변의 강력한 농경정주 왕조의 흥망성쇠에 따라 결정되었다. 유목민들은 세력이 강성할 때 결단력 있는 지도자를 옹립하여 다른 유목민 부족들을 복속시켰다. 그 후 농경정주민들의 왕조가 쇠망의 길을 걷고 있으면 자신들 세력을 초원과 사막 바깥으로 확장시켜 농경정주국가를 정복하였다. 그러나 유목민족들이 이같이 세력을 확장하여 농경정주민들의 문화를 수용하고 유목민족 특유의 야성을 잃게 되면 쇠락의 길을 걸었다.유목민족들은 원래 전투력과 기동력이 뛰어나 후방에서 별도의 물자보급
칭기즈칸도 한 때는 나약하고 찌질한 평범한 인간이었다. 몽골비사에서는 칭기즈칸이 태어날 때부터 핏덩이를 손에 쥐고 태어나서 위대한 정복자가 될 운명이었다고 하지만, 잘나가는 칭기즈칸 후손들이 조상을 미화하려고 만들어 놓은 신화에 불과하다. 그가 어렸을 때부터 영웅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그는 개를 무서워했고 잘 울었다. 부족들이 이사를 갈 때 그를 깜빡 잊고 놔두고 간 일화가 있을 정도이니 주목받는 자식도 아니었다.그가 8 내지 9세가 되었을 때 아버지 예수게이가 타타르족에게 독살당하자 여자와 애들만 남은
동서양을 넘나든 학술 교류이평래 ‘몽골제국과 동서문명의 교류’에서는 몽골제국 시절에는 동서간 학술과 과학교류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특히 카안 울루스(원나라)와 훌레구 울루스의 교류가 활발했다. 대원의 수도 대도에는 이란과 이슬람권 학자들이 상주하고, 훌레구 울루스의 수도 타브리즈에서도 다수의 중국학자들이 활동했다. 유라시아 전역의 몽골의 칸 국들은 대군과 대량의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서 서로 역법을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여러 장소에서 활동을 조정하고 사회생활을 규제해야 했다. 몽골제국은 새로운 지역을 정복할 때마다 행성과 별의 움
역참 ‘얌(Yam)’은 몽골제국 네트워크의 핏줄이었다. 13세기에서 14세기 초까지 주식회사 몽골제국은 제국 전체의 교역로를 유지했고 30Km에서 50Km마다 역참에 물자를 쟁여두었다. 마르코 폴로도 몽골제국을 여행하면서 역참을 자주 이용했다. 그는 이런 역참들이 ‘아름답고’, ‘으리으리할’뿐 아니라 ‘왕에게 어울리는 비단이나 다른 모든 사치품까지 갖추고 있다’고 묘사했다. 몽골제국은 이 교역로를 통한 무역을 장려하여 여권과 신용카드의 기능을 합친 초보적인 유형의 신분증인 ‘파이자’를 나누어 주었다. 칸국 간 상부상조, ‘쿠비’체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