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저널(WSJ)의 관련 기사 갈무리
▲월스트리트저널(WSJ)의 관련 기사 갈무리

 

미 최대 완성차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가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에 대응하기 위해 직접 반도체 생산에 뛰어들기로 했다. 앞서 현대차와 폭스바겐, 도요타, BMW 등도 반도체 생산 내재화를 선언한 바 있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뚜렷한 추세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당장 반도체 부족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전기차‧자율주행차 시대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기술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GM은 전날 퀄컴, NXP 등 반도체 업체와 협력해 반도체 칩을 공동 개발·생산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각종 기능을 제어하는 다수의 ‘마이크로컨트롤러’ 칩도, 통합 칩으로 여러 기능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만들 계획이다. GM측은 “연간 1,000만 개 수준을 대량 생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크 로이스 GM 사장은 투자자와 콘퍼런스콜에서 복잡한 제조 과정을 단순화하고 이익을 키우기 위한 폭넓은 전략의 일부로 몇몇 반도체 업체와 협력을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몇 년간 반도체 수요가 배로 증가할 것으로 본다”면서 “GM 차량이 기술적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GM은 현재 제조 과정에서 다양한 반도체 종류를 이용 중인데, 이 중 95%를 줄여 세 가지 계열의 반도체만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로이스 사장은 이같은 집중 전략으로 이들 반도체의 생산이 증가할 수 있는 데다, 반도체의 질이 향상되며 공급에서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날 오전 포드 역시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글로벌파운드리와 전략적 제휴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합의에 따라 향후 양사는 미국 내에서 반도체를 공동 생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양사는 또 포드 자동차에 특화된 새로운 반도체를 설계하고, 미국 내 반도체 생산량과 자동차 업계 전반에 대한 반도체 공급량을 각각 늘리기로 했다.

포드는 자사 차량 전용 반도체를 개발하면 자율주행, 전기차 배터리 시스템과 같은 최첨단 성능을 더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척 그레이 포드 부사장은 “차량 소프트웨어 사양이 높아지면서 핵심 기술을 수직 통합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며 “생산 역량과 기술 자립도를 동시에 끌어올려 공급망을 재창조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WSJ는 미 양대 완성차 업체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두고 “완성차 업체들은 수십 년간 주요 부품을 외부 공급업체를 통해 조달해왔는데 최근 이 방침을 뒤집고 있다”면서 마치 완성차 업체들이 직접 제철소를 운영하고 거대 부품사를 소유하던 과거로 회귀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포드와 GM이 반도체 개발에 직접 나서는 이유는 무엇보다 자체 조달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다. 자동차 업계는 세계적인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에 따라 1년 넘게 생산 차질을 겪고 있다. 반도체 공급난의 직격탄을 맞은 GM, 포드는 3분기 순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0%, 23% 급감했다. 완성차 업계는 반도체 품귀 현상이 내년 상반기에서 후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포드는 이번 반도체 개발 협력으로 미래에 재발할 수 있는 부족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톰 콜필드 글로벌파운드리 최고경영자(CEO)도 이번에 포드와 체결한 협약이 “장기적인 수급 균형을 보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다 장기적으로는 미래차 기술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반도체 기술력 확보가 필요하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차량용 반도체는 엔진 보정부터 에어백까지 자동차의 다양한 기능을 제어한다. 향후 자율주행, 멀티미디어 환경, 결함 감지 원격 소프트웨어 등 신기술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더욱 고성능 반도체가 필요하며 가격도 비싸진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는 자율주행 기술 레벨2 수준(특정 상황에서 보조 시스템 작동)에서 드는 차량용 반도체 비용은 평균 160~180달러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자율주행 기술 레벨5(완전 자율주행, 무인 주행 가능) 수준으로 올라가면 반도체 비용이 1150~1250달러로 7배가량 뛴다고 전했다.

이같은 이유에서 여타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반도체 내재화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호세 무뇨스 현대자동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지난달 “반도체 제조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현대차도 그룹 내에서 자체 칩을 개발할 수 있기를 원한다”고 언급했다. 같은 맥락에서 폭스바겐과 현대차는 차량용 반도체 점유율 1위인 인피니언과 제휴를 맺고 전기차의 충전 시간을 단축하는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폭스바겐은 또 자체 자율주행 칩 설계 계획을 밝혔고, 최근엔 BMW와 퀄컴이 자율주행 칩 계약을 맺은 사실이 공개됐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차량용 반도체 내재화 계획/출처 각사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차량용 반도체 내재화 계획/출처 각사

그러나 완성차 업계의 칩 자립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전체 반도체 시장의 10% 수준으로 규모가 작은 반면, 첨단 기술이 대거 도입되면서 칩 개발 난도는 올라가고 있다. 더욱이 차량용 반도체는 제조사마다 달라 다품종 소량생산 체계다. 파운드리 업체 입장에선 기술이 까다롭지만 대량 생산‧공급 방식인 IT용 반도체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최첨단 칩을 생산할 수 있는 파운드리는 현재 세계적으로 TSMC, 삼성전자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파운드리로선 차량용 칩 공급을 늘리면 결국 돈을 더 벌 수 있는 칩 공급을 줄여야 한다. 완성차 업체까지 자체 칩을 주문하고 나서면, 글로벌 주문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차량용 반도체 사업에서 일찌감치 앞서 가고 있는 테슬라와 애플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블룸버그통신은 18일(현지시간) 애플이 자율주행용 인공지능(AI) 칩 개발을 마무리해 4년 뒤인 오는 2025년 ‘완전자율주행 전기차’를 내놓겠다는 내부 방침을 정했다고 전했다. 특히 이 매체는 애플이 당초 최대 7년 뒤로 잡았던 출시 시점을 과감하게 앞당긴 것도 자율주행 시스템을 뒷받침할 칩 개발이 상당한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앞서 올 8월 전기차 1위인 테슬라도 독자 설계한 자율주행 신경망 처리 슈퍼컴퓨터 ‘도조’의 두뇌격인 AI 반도체 ‘D1’을 전격 공개했다. 도조는 오토파일럿 훈련에 집중적으로 활용될 초고속 훈련 컴퓨터로 3,000여 개의 전용 D1 칩으로 이뤄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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