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을 필두로 최근 반도체 수급난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도 역내 반도체 산업 자립과 육성 경쟁에 팔을 걷고 나섰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중 무역갈등으로 빚어진 국지적 반도체 수급난과 달리, 앞으로 5G·인공지능·자율주행차·클라우드 등 미래 산업에서는 전방위적으로 첨단 반도체 의존도가 커질 전망이어서 세계 각국의 경쟁이 더욱 격화되는 양상이다. 최첨단 미세공정 기술과 생산 능력을 보유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향후 어떤 이해득실을 불러올지 주목된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11일(현지 시각) “EU는 독일과 프랑스의 주도로 최대 500억유로(약 67조1175억원) 규모의 첨단 반도체 제조기술 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EU는 삼성전자와 TSMC의 참여를 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재무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삼성전자와 TSMC의 참여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두 회사는 반도체 분야에서 가장 혁신적인 선도 기업인 만큼 EU 프로젝트에 참여가 가능하다”면서도 “다만 아직까지 결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TSMC와 삼성전자는 블룸버그의 취재에 답변하지 않았다.

EU는 지난 2019년말 미래 산업 기술 확보와 노동시장 안정화를 위해 ‘EU 공동 관심 분야 주요 프로젝트(IPCEI)’를 발족한 바 있다. 1차 프로젝트로는 독일·프랑스·벨기에·이탈리아 등 7국 정부와 자동차 업체 BMW·오펠, 화학업체 바스프 등이 공동 참여하는 32억유로 규모의 자동차 배터리 프로그램이 꼽혔다. 이번에 추진할 첨단 반도체 제조기술 확보는 IPCEI의 두번째 프로젝트다.

앞서 지난 6일에는 페터 알트마이어 독일 경제장관이 “독일은 반도체 제조 기술 프로젝트에 10억유로를 즉시 투입할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독일과 EU에 특허·개발·생산 기능을 모두 갖춘 첨단 산업 공급 체계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아시아 국가들에 의존하는 현 상황을 극복하지 않으면 미래 기술 경쟁에서 뒤쳐질 수 밖에 없다고도 강조했다.

이번 EU의 반도체 산업 육성 목표는 역내에서 10나노 이하 초미세공정 반도체 생산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EU의 최종 목표는 2나노 수준까지 도달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동시에 장기적으로는 전세계 반도체칩과 마이크로프로세서의 20% 이상을 EU 내에서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위해 유럽 내 주요 반도체 업체들이 참여하는 연합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연합체에 대한 논의는 이미 시작됐으며, 그 내용은 올해 1분기 중 발표될 예정이다.

유럽은 과거 반도체 공장을 다수 보유했지만 네덜란드 NXP, 독일 인피니언, 스위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주요 차량용 반도체 업체들이 TSMC나 UMC와 같은 대만 파운드리에 주로 외주 생산을 맡기면서 최근 20년간 자체 생산량을 크게 줄여왔다. 결과적으로 지난해 말 자동차 수요 급증에도 반도체를 급히 조달하지 못하게 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EU가 반도체 첨단 기술을 가진 업체들을 유치해 생산 기반을 갖추는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세계적으로 10나노 이하 반도체 제조기술을 보유한 TSMC와 삼성전자가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EU에 앞서 미국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미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지난해 12월 예측에서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차량용 반도체를 구할 수 없어 올 한해 610억달러(약 67조6000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며 정부 차원의 지원을 촉구하고 나섰다. SIA는 지난 1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반도체가 코로나19 극복과 미 경제 회복에 핵심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협회는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 제품의 점유율이 1990년 37%에서 현재 12%로 줄었다”며 반도체 산업 육성이 결국 “국가 안보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보조금이나 세금 감면 등의 형태로 상당한 규모의 자금 지원이나 지원책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바이든 대통령이 향후 수주내에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다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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